(비평) 나규환, 삶의 현장과 작업실을 횡단하는 조각가
이광석 비평
2015
나규환은 그 누구보다 청년의 건강성이 느껴지는 조각가다. 그를 보면 쉽게 바뀌지 않는 현실과 열악한 예술 현장이 주는 스트레스가 산산이 깨질 듯싶다. 그만큼 그의 작업에서 강건함과 활력이 엿보인다. 살아온 삶의 무게에 비해서 그는 현실을 대면하려는 작가적 태도가 엿보인다. 겉으로 풍기는 모습은 뭇 청년과 다를 바 없어 보이나, 그의 조각들에는 현장과 현실에서 단련된 무게가 켜켜이 쌓여 있다.
포천에서 구본주를 만나다
청년조각가 나규환은, 남들처럼 입시 미술학원을 다니며 대학을 준비했으나 그리 그와 같은 경쟁이 체질이 아니었던가 싶다. 형식적 이유를 핑계 삼아 덜 경쟁적이고 나름 희소성도 있다는 조소를 전공삼아 홍대를 진학했다고 한다. 실상은 회화와 달리 조소가 지닌 질감이나 입체성이 주는 느낌에 그 스스로 매료되었던 터였다. 하지만 그의 대학생활은 순탄치 못했다. 결국 자의반타의반 학교를 중도에 그만둔다. 이유는 학교 적응력과 능력 부족이라 고백한다. 예를 들어, 그는 학교에서 ‘자유’에 관한 과제 제출을 하라 해도 이를 고민하다 번번이 과제제출 기한을 넘겼던 적이 부지기수였다. 제도교육의 장에서 바깥으로 일찍이 자발적으로 튕겨져 나오면서 그의 삶은 좀 더 현실에 닿은 예술을 전업으로 삼아 치열해진다.
다행히도 그의 중단된 제도교육을 대신해 그의 삶 스승이 되어준 이는 이제 고인이 된 조각가 구본주였다. 2003년 포천에 살면서 우연하게 구작가와 처음 인연을 맺어 그 해 9월말까지 그들은 6개월간 거의 매일같이 함께 했다. 안타깝게도 구작가는 그 해 불의의 교통사고로 짧은 생을 마감한다. 저세상으로 떠날 때 그의 나이 서른일곱이었다. 오늘을 사는 나규환과 거의 비슷한 연배다.
나규환은 삶 속 찰나의 시간이었지만 그의 스승과 함께 하며 나눈 대화들을 마음으로 기억한다. 함께 하면서 고 구본주 조각가는 적어도 어린 후배가 자신과 똑같은 작품의 경향이나 스타일을 따르지 않았으면 했다. 구작가는 오히려 나규환과 작품의 창작 방법이나 기법보다는 관점이나 태도를 공유하려 했다 한다. 관점은 나누되 후배의 작업 방식을 구속하지 않으려는 배려의 소치다. 세상의 생각들이 마음의 한 껸에 단단히 깔리는 20대 청년기에 구작가의 말 한마디 한마디는 마치 스펀지처럼 그의 마음에 흡입되어 크게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었다. 살아생전 구작가는 밝은 청년 나규환이 미래 좋은 작가로 성장할 덕목들을 잘 갖추고 있다고 줄곧 얘기했지만, 너무나도 급히 저세상으로 떠난 그의 멘토가 되었다.
나규환은 자신의 멘토 구본주의 유족을 상대로 배상금을 줄이기 위해 추악한 소송을 벌였던 삼성화재에 분노했던 많은 예술가들 중 한 명이 되었다. 그는 삼성화재 앞 1인 시위를 벌이고, <보험사의 횡포>(2005)라는 목판 작업을 통해 현실의 부당함을 표현하고자 했다. 이 목판 작업에는 달리는 차에 치이는 구작가의 모습이 새겨져 있다. 목판은 달리는 차 전면유리 바깥으로 유령같은 팔이 흘러나와 구작가의 몸에서 그의 혼인 듯 돈인 듯 뭔가를 빼내어 망으로 낚아 채가는 모습을 담고 있다. 나규환의 대표적 작업 중 하나이기도 한 <삼위일체>(2012)에는, 성부, 성자, 성령 대신 십자가에 각각 삼성 이건희 회장, 이명박 대통령이 매달려 있고 자본신용사회의 상징인 카드번호가 이를 가로지르고 있다. 한국 자본주의 현실의 삼위일체이자 권력의 실세가 무엇인지 그리고 우리를 규정하는 포악한 대한민국 현실의 작동방식이 무엇인지를 이 작업은 명쾌하게 보여준다. 게다가 재벌회장과 국가리더의 순백의 조각상들이 짐짓 자아내는 종교적 순교와 숭고함의 블랙코미디적 모습들을 마주하면, 관객들은 실소를 금할 수 없다. 생을 달리한 구본주를 그 청년 조각가에게서 본다.
일상 삶과 현장의 경계
구본주와 함께 했던 포천에서의 삶은 그에게 소중했고, 이제 자신의 작업실도 동일한 장소에서 꾸려 가고 있다. 대개 파견작가들 마냥 그동안 그는 작업실 밖에서 현실 개입의 현장이나 룰루랄라 예술인 협동조합 일을 하면서 바쁘게 보내다가도, 이내 포천 작업실에 들어오면 두드리고 깎고 연마하고 붙이고 세우는 조각 작업을 꾸준히 수행했다. 그러길 10여년이 지났고, 이제 작업실 밖 나규환은 ‘예술행동가’로 불린다. 기자들은 나규환을 ‘현장예술가’라 일컫는다. 전진경, 전미영, 이윤엽 등과 함께 부초같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에 빗대 만든 말인 ‘파견예술가’라 불리기도 한다. 다 옳다. 적어도 밖에서 비춰지는 작업의 영역에서는 그렇다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조각가 나규환의 작업을 현실 개입의 예술로만 얘기하기에는 그리 간단하지 않다.
부산 민주공원에서 신진작가 지원을 받아 벌인 그의 첫 개인전시 <인간>(2012-13)은, 이전에는 대면하지 못했던 나규환의 다른 감성들을 함께 맛볼 수 있는 기회였다. 현실 정치와 자본의 탐욕이 동반하는 민초들의 고통이 그의 작업 중심에 있지만, 여전히 작가 나규환에게 일상 삶을 영위하는 인간의 존재론적 질문들이 작품들에 끊임없이 투영되고 있다는 점을 깨달을 수 있다.
작품 <삶은 여행>(2012)에는 한 권의 노트와 나무로 깎은 옷과 우산이 포개져 고정된 작품이다. 언젠가 두발로 미친 듯 달리고 난 후 그가 이 세상을 살아가며 필요한 최소한의 필수품에 대해 성찰하며 얻은 오브제가 바로 이들이다. <인간모독>(2009)은 작업실 안에 들어왔던 쥐를 보면서 만든 가변설치 작업이다. 그는 흘러들어온 쥐를 보며 한치 앞도 못보고 사는 인간의 삶과 꼭 닮았음을 느낀다. 그의 설치 작업에는 쥐덫으로 만든 거대한 피라미드 구조물에 쥐들이 높낮이와 자세를 달리하며 여러 곳에 자리 잡고 있다. 아슬아슬하게 언제고 덫에 갇힐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쥐들은 수직 계열화된 덫의 세상에서 정말 ‘세상 모르고’ 찧고 까불며 놀고 있다. <유리창에 비친 산을 보고 날던 새>(2010)도 비슷한 정서의 표현으로 보인다. 한 때 옳다고 믿었던 신념과 이념을 찾아 헤매던 인간들이 유리에 비친 그 신기루에 부딪혀 산산조각 나는 모습을 그는 가엾은 새로 빗대어 표현한다.
밀면 자동으로 머리가 까딱거리게 만든 닭 모양의 나무 오토마타 <꼬꼬닭>(2012)과 그것을 장난감 크기로 만든 아이들 놀이용 <닭>(2011)에서도 그의 소소한 일상이 묻어난다. 언젠가 포천 작업실 동네를 지나다 마주친 닭과 그 깃털 색감에 매료되어, 이에 착안해 딸에게 뭔가 놀이거리를 만들어주겠다는 일념으로 시작한 작업이라 한다. 한탄강댐 건설로 수몰 지역의 삶을 기록으로 남기는 공공예술 프로젝트 ‘포천 도롱이집 이주프로젝트’에 참여하며 만들었던 <달빛소나타>(2010) 오브제도 흥미롭고 재미나다. 벽시계 속에는 주로 농민들이 쉬며 즐겼던 화투장이며 윷, 농민신문, 노끈 등이 들어있고, 그 아래 구식 피아노가 자리하고 있다. 시계 속 농한기 소박한 농민들의 놀이문화에 빙그레 웃음이 절로 난다. <부부>(2010) 또한 일상의 행복이 묻어난다. 이는 나무로 정성스레 깎은 투박하지만 튼실해 보이는 한 쌍의 밥그릇과 국자가 얹힌 작품이다. 나규환이 크게 아끼는 작업이다. 그냥 보면 나무그릇에 국자가 얹힌 듯 보이나 잘 보면 원앙새 한쌍을 묘사한 태가 난다. 소박하고 넉넉하지 않지만 예쁘게 시작하는 신혼부부를 위해 기획한 작업이다.
이들 모두는 조각가 나규환이 일상 삶을 살며 느끼며 소소하게 꾸린 작업들이다. 나는 오히려 이들 작업에서 바깥에 그리 알려지지 않은 조각가 나규환의 따뜻한 감성의 내면들이 살아 있음을 확인한다. 마찬가지로 이것이 그가 현장의 고민을 외화하는 때에도 정치성의 과잉으로 치닫지 않은 절제의 반작용이 될 수 있다고 평가하고 싶다.
응축의 미학
나규환은 <부부>만큼 아끼는 작업으로, <대추리, 더 나은 보상을 바라는 것이 아닙니다>(2006)를 꼽는다. 이는 평택 대추리 미군기지 이전으로 농민들의 투쟁이 이뤄졌던 당시에 만들어진 작품이다. 작품의 내용은 실제 모판을 잡고 있는 목각의 포개진 양손이다. 모를 심다 바로 나온듯한 진흙 묻은 양손에 거친 주름들이 패여 있음을 본다. 그 손은 너무도 겸손하고 우직해 보여 무엇에 저항하거나 술수를 부리는 일과는 전혀 무관해 보인다. 희생을 강요받는 손이자 여기저기 다친 가진 것 없는 농투성이의 맨손이다. 르포사진가 정택용이 왜 그렇게 사람들의 손에 집착하는지 조각가 나규환의 손작업을 보면서 이제야 좀 감이 온다.
대한민국에서 천대받고 기층을 구성하는 일반 서민들, 그리고 비정규직과 일용직의 삶에 대한 그의 관심 또한 흥미롭다. <당신이 쓰다버린 냉장고 아래 살아있습니다>(2010)는 건설 현장에서 인부로 일하는 후배가 등에 냉장고를 이고 서 있는 모습을 보면서 만든 작품이다. 문짝조차 없고 돈이 될만한 철조각은 다 뜯겨져나가 형체만 남은 냉장고 껍데기를 뒤집어 쓴 일용 노동청년의 모습은 ‘아프니까 청춘’이란 한 교수의 책에 침을 뱉고 싶게 한다. <고시원 새벽 밥상 앞에서>(2009)는 하류 인생들의 밥상을 들여다본다. 싸구려 플라스틱 반찬 용기들 안은 휑하니 비었다. 그나마 용기 하나에는 부패한 듯 보이는 두 개의 목각 고추만이 덩그러니 담겨 있다. 이들 용기를 고정하는 바닥은 거울면이다. 관객은 싸구려 용기들 사이로 언뜻 거울에 투영된 자신의 제 모습을 발견하는 재미가 있다. <퀵서비스맨>(2011)은 다소 코믹하다. ‘독수리 5형제’가 쓴 듯한 헬멧의 퀵서비스맨이 휴대폰을 확인하는 모습의 목각이다. 팔 사이로 낀 의뢰인 소포에다 꽉 맞는 조끼와 제복이 우스꽝스럽다. 게다가 오브제도 아이들이 갖고 놀만한 피규어 사이즈다. 자본주의 유통 시장에서 끊임없이 요구되는 속도전에 동원되는 인형 노동자들의 모습과 꼭 닮아 있다.
<사는 것이 아니라 사는 곳입니다>(2010)란 가변 설치도 주목해 볼 만하다. 이는 종로 피카디리 뒷골목 쪽방촌을 답사하고 만든 설치작업이다. 작품 제목은 SH공사의 건설 현장 외벽을 장식하는 구호를 따 왔다. 건설사 광고 의도야 어쨌건, ‘사는 것’(존재방식)보다 ‘사는 곳’(시멘트더미)을 쳐주는 현실이 우스꽝스럽다. 어쨌거나 ‘사는 곳’은 시멘트더미일지언정 이제 서민들에게 마지막 쉼터로 여겨진다. 나규환은 쪽방촌을 묘사하기 위해 회색의 벽돌로 둘러 세운 0.5평의 삭막한 공간을 만들어냈다. 이도 안과 밖이 역전된 채 존재한다. 외벽에 전원 플러그와 옷이 걸려 있고 세탁기가 자리한다. 쪽방촌의 살림살이가 외벽에 내걸린 모습에서 착안했다. 안에는 길거리 벽 광고가 찍혀 있고, 천정 없는 집 위 여기저기로 전기선이 엉켜있다. 집안 벽에 커다란 십자가가 걸려 있고, 그 아래 텔레비전에 ‘개그콘서트’ 영상이 흐른다. 하루종일 힘든 일과를 마친 서민들은 좁은 시멘트 공간 속으로 기어들어가 가벼운 쇼프로에 만족하며 종교에 안위하며 현실의 고통스런 삶으로부터 방벽이 되어줄 그 시멘트 쪽방에서 마음의 평온을 되찾는다.
<부족한 사람들>(2008)은 가진자와 못가진자의 경계가 무엇인가를 다시 되묻는다. 이 작품은 나무로 섬세하게 깎아 붙여 만든, 서로 등을 대고 누운 사람 둘의 형상이다. 하나는 이불을 움켜지고 있고 다른 이는 추위로 웅크린 채 누워 있다. 이불을 뒤집어 쓴 채 누워있는 목각 인형이 재화를 움켜진 있는자 혹은 가진자로 보이지만 그도 들여다보니 탐욕에 예속된 노예라, 역시 벗고 굶주린 자와 그리 달리 보이지 않는다.
현실의 정치적 개입은 이렇듯 일상의 모습들로부터 시작된다는 명제를 나규환은 있는 그대로 조각 속에 응축해 보여준다. 현실 개입의 근거가 낮은 곳의 관찰과 공감에서 얻어짐을 그는 어린 나이에 이미 간파하고 있다. 그는 조각을 시 쓰듯 하려 한다. 여러 개념들을 늘어놓는 방식이 아니라 하나의 조각물 속에 그 개념들을 응축하고 압축해 담아내는 방식 말이다. 여러 소재와 장르를 넘나들며 다양한 형식주의 실험을 하면서도, 현실을 통찰해 한 곳에 집중하는 응축의 미학이 그의 지향이다.
작업실 밖과 안
우리에게 이제까지 조각가 나규환하면 다음과 같은 작품들이 더 익숙하고 강렬하다. 용산 망루에 올라 선 철거민의 모습을 형상화한 <끝>(2009). 양철로 만든 비옷을 입고 한 주먹을 쥐고 서서 굳게 입을 다문 철거민의 모습에서 물러설 곳 없는 비장한 삶을 확인한다. 오브제 <철거민을 풀어줘요>(2010)는 구속된 철거민들의 부당 재판 소식에 1인 시위 퍼포먼스용으로 만들어졌다. 대대로 민초들의 상징이던 패랭이모 장식처럼 보이는 것은, 일용노동자가 쓰는 망치를 올려 둔 판사봉을 표현한다. 약자의 법이 되어야할 판사봉이 그들의 비수가 되는 현실을 조롱한다. 누명이란 시커먼 바위의 상징 오브제에 억눌려 한쪽 발가락만 삐져나와 질식사할 것 같은 <누명을 쓴 사람>(2010)은, 또한번 공권력에 포획되어 형상조차 사라진 힘없는 이의 모습이다. 본을 뜬 노동자에 페트병으로 만든 비옷을 입힌 <마른 하늘의 물벼락>(2012)은, 누구도 사회적으로 책임지지 않고 출구조차 없는 비통한 현실을 대면한 대한문 앞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들의 먹먹한 모습을 그리고 있다.
나규환의 개인전을 통해 보여준 작업들은 이렇듯 소소한 일상 삶의 토픽들에서 끝없이 고통이 점철되고 곡예가 펼쳐지는 정치 현실의 장에까지 잇닿아 있다. 그의 경계 횡단은 사실상 그만이 지닌 힘이다. 게다가, 그는 즉흥성, 순발력, 긴장감을 요하는 현장 ‘파견’ 예술의 오랜 경험을 끌어들여 이를 작업실로 다시 가져와 고도의 집중력을 통해 조각에 각인하는 방법도 잘 알고 있다. 일상과 정치, 작업실 밖과 안을 구분해 볼 줄도 알지만 서로의 경계를 넘나들면서 나규환은 강건한 구상조각가의 길을 걷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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