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평) 현장과 예술, 내용과 형식의 변증법
김준기 (미술평론가)
2012
두 사람이 마주 보고 서있다. 얼굴에는 좌절과 절규가 담겨있다. 그들은 플라스틱 소재로 만든 옷을 입고 있다. 소조로 만든 인물상 위에 우비를 상징하는 플라스틱 소재의 PET병을 결합한 이 작품 <마른 하늘의 물벼락>은 구상인체조각에 오브제를 결합한 평범한 외형을 가지고 있지만 저변의 맥락은 매우 각별하다. 이 작품은 한국사회의 갈등이 가장 첨예하게 드러나는 장소인 집회, 시위 현장의 정서를 압축하고 있다. 경찰의 물대포에 대응해서 비가 오지 않는데도 우비를 입고 움직이는 일이 일상이 되어버린 현장의 상황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평범한 구상인체조각을 매우 특수한 상황으로 해석하게 만드는 힘은 나규환의 현장의 체험에서 나온다. 그는 투쟁의 현장에 뛰어들어 활동하면서 체득한 현장의 상황과 장면, 감성과 정서를 가진 예술가이다. 그에 따르면, 그것은 ‘나의 일상의 이야기이자 이 시대의 이야기’이다. 대다수 사람들에게 특별한 사건인 일이 그에게는 일상이라는 얘기다. 요컨대 나규환은 매우 특수한 체험과 정서를 가진 예술가이다.
서른 네 살에 이르기까지 지난 10년 가까운 시간동안 나규환은 치열하게 작업실과 현장을 오가며 삶의 예술을 만들어왔다. 그의 세계는 예술형식에 중심을 두는 조각가들의 일반적인 관행과는 거리가 멀다. 예술내용을 담아내기 위해서 그는 다양한 예술형식을 추구한다. 조소를 전공한 그는 충분히 장인적인 작업 과정을 거쳐서 한 점 한 점의 완성도 높은 작품을 만들어낸다. 동시에 그는 작업실 안에 갇혀 있다면 도저히 얻어낼 수 없는 현장의 내용과 형식들을 만났다. 그는 현장 작업과 작업실 작업을 병행한다. 대체로 무겁고 딱딱한 물질과의 전면적인 대결을 전제로 하는 조각가들의 작업 관행에 비춰봤을 때, 나규환의 방식은 이질적이다. 물론 그의 작업에는 소조도 있고, 조각도 있으며, 드로잉이나 오브제 설치와 영상 등도 있다. 이 모든 작업들은 작업실에서의 매우 정교하면서도 노동집약적인 작업과정을 거쳐서 나온 것이다.
나규환은 작업실에 박혀서 언어유희의 세계에 탐닉하지 않는다. 그는 지속적으로 움직인다. 그의 유동성은 새로운 장소에서 만난 상황과 장면을 담은 다수의 작품들 속에 잘 담겨있다. 미군기지확장이전 때문에 마을을 비워야했던 경기도 평택 대추리의 상황을 담은 <2006년 대추리, 더 나은 보상을 바라는 것이 아닙니다>는 ‘올해도 농사 짓자’는 대추리 주민들의 간절한 마음을 표현했다. 용산참사 현장에서의 설치나 퍼포먼스 작업에 쓰인 <철거민을 풀어줘요>와 <끝>은 현장에서 채집한 철판을 이용해서 만든 작품들이다. 도롱이집 이주프로젝트를 진행하던 포천 교동마을에서 만든 <달빛 소나타>는 가난하지만 행복한 서민의 삶을 담은 오브제 조각이다. 배제, 상실, 상처, 갈등, 대립이 첨예하게 드러나는 장소에서 그는 새로운 스타일과 내러티브를 만들어왔다.
나규환은 자본과 권력의 탐욕으로 가득한 사회와 인간, 구조와 개인의 문제를 성찰한다. 사회의 권력관계를 담은 비판적 리얼리즘 경향의 작품들에는 일상과 사건의 서사가 공존한다. 나무로 만든 조각 작품 <부족한 사람들>은 과잉과 결핍이 공존하는 우리사회의 모습을 집약하고 있다. <당신이쓰다버린냉장고아래살아있습니다>는 냉장고를 뒤집어 쓴 입체 인물상으로 위기에 처한 현대인의 삶을 담았다. 카드와 대통령과 재벌회장, 그리고 신용카드라는 세 가지 상징을 결합한 <삼위일체> 같은 조각도 있다. 또한 그는 오브제 설치 작업으로도 자신의 서사를 풍부하게 확장한다. <인간모독>은 쥐덫을 이용한 설치 작품이다. 사회의 구조가 만든 거대한 덫에 갇혀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인간 삶의 허구를 표현한 작품이다.
그는 평범한 장면과 상황들을 압축적인 언어로 담아내는 작품들로 매우 감성적인 일상의 서사를 구축하기도 한다. <고시원 새벽밥상 앞에서>는 나무와 플라스틱 그릇, 거울 등으로 만든 작품인데, 가난하고 남루한 삶을 바라보는 나규환의 감성을 잘 드러내고 있다. 힘겨운 삶이지만 독특한 매력을 발산한 한 오토바이 퀵서비스맨을 만났을 때의 감성을 담기도 한다. 일상의 사물들을 이용한 오토마타 조각을 만들어 재기발랄함을 드러내는가 하면, <유리창에 비친 산을 보고 날던 새>와 같이 유리창에 비친 산을 착시하여 날아들어 죽은 산비둘기의 모습에서 만약 자신의 신념이 허상이라면 그 얼마나 아찔한 일이겠는가 하고 자문하기도 한다. 사건으로 가득한 갈등의 현장뿐만 아니라 평범한 일상의 공간에서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이러한 작품들은 그의 예술적 감성을 찬찬히 들여다볼 수 있게 해준다.
애초에 그는 형상 인체 조각의 힘을 신봉하는 전형적인 조각가 지망생이었다. 인체조각 자체가 새로운 관심사를 만들어내던 시기는 한참 전에 지나갔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것에 천착할 수밖에 없었던 시기도 있었다. 인체조각의 구속과 속박으로부터의 탈출은 현장과의 만남이 있어 가능했다. 나규환은 우리미술계에 만연한 신진이데올로기의 생성과 발전 과정과는 전혀 다른 맥락으로 예술가 정체성을 쌓아왔다. 그는 미술대학을 졸업한 후, 레지던스 프로그램을 거치거나 각종 공모전 등의 수상제도, 대안공간의 신진육성 프로그램, 갤러리의 발탁 등 일반적인 신진 발굴 및 육성이라는 코스와는 다른 방식으로 활동해왔다. 그에게 있어 현장은 대안공간이나 화랑, 미술관 등의 전문적인 미술제도공간이 아니다. 그의 현장은 첨예한 대립과 갈등이 표출되는 사회의 현장이다.
그는 처음부터 구본주-삼성화재 사건, 프리티벳 전국순회 프로젝트, 쇠고기 촛불시위와 한미 FTA 문제 등과 같은 사회적 의제의 현장에 뛰어들었다. 또한 코스콤, 지엠대우, 기륭전자, 콜트콜택, 한진중공업 등의 해고노동자 문제 등 노동현장에 참여해 예술행동을 실천했다. 대추리마을, 태안기름유출사건현장, 용산참사 현장, 제주 강정마을, 한탄강수몰지역 등과 같은 약자들의 공간에서 예술적 실천으로 공론장을 만드는 데 함께 해왔다. 그는 파견미술팀이라는 행동주의 그룹의 일원으로 활동하면서 다양한 현장에 뛰어들어 스스로를 투쟁의 현장에 파견했다. 그에게 있어 ‘현장은 실천의 장이자 배움의 장’이었다. 그는 현장에 뛰어들어 예술행동을 실천해왔고, 그곳에서 삶을 배우며 새로운 미술형식을 찾아 나서곤 했다.
존재와 의식의 관계를 정리한 마르크스의 유명한 테제에 따르면, 의식이 존재를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가 의식을 규정한다. 예술형식과 내용의 문제를 이 테제에 빗대어 생각해본다면, 모더니즘 예술의 핵심은 내용이 형식을 규정하는 게 아니라 형식이 내용을 규정한다. 그러나 나규환의 경우에 이 명제는 사뭇 다른 문장을 생성한다. 그의 예술에서는 작업의 형식이 내용을 규정하는 게 아니라 현장의 내용이 예술의 형식을 만들어 낸다. 그가 예술가 정체성을 발견하고 자신의 위치를 정립하는 과정은 곧 예술의 쓰임새를 새롭게 발견하고 자신의 역할을 찾아나서는 과정이었다. 그에게 있어 예술은 양식이나 장르의 문제가 아니라 태도와 방식의 문제이다. 삶과 예술, 내용과 형식의 변증법이 나규환의 예술 속에 오롯이 담겨있다. 마지막으로 나규환의 첫 개인전을 통해서 새삼 확인할 수 있는 명제를 덧붙인다. “행동주의 예술은 스스로 선언한 자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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